Végtelen erőfeszítés, végtelen kitartás, végtelen szerénység. (Rain vezérelve)

Tudtam, hogy ránézésre nem tűnök valami nagy számnak, a megjelenésem sem túl vonzó, de a bensőm elég rendkívüli. Minden színpadra lépés előtt azt mondom magamnak, hogy én vagyok a legjobb, és minden előadás után ugyanúgy azt, hogy nem én vagyok. Ezért minden fellépés előtt 120 százalékosan kell felkészülnöm, hogy az előadáson 100 százalékos teljesítményt tudjak nyújtani. Ennek érdekében minden álló nap folyamatosan képzem magam. Már nagyon hosszú ideje alváshiányban szenvedek, mert ha éppen nem dolgozom, akkor vagy edzek, vagy a koreográfiákat és a dalokat próbálom. Éppen úgy, mint a filmfelvételek idején, ha valamit nem csináltam jól, képtelen vagyok aludni. Akár színészként, akár énekesként, a legjobbat kell tudnom kihozni magamból. De nem kell aggódni, hogy most nincs elegendő időm az alvásra, jut arra majd bőven a halálom után. (Rain)

Ez a fiatalság, ez az egészség... és a túlcsorduló önbizalom... az erőfeszítés, amit az oly hihetetlen előadásai sikeres megvalósításáért tett... és a tehetség, amit felmutat, ezek töltenek el spontán tisztelettel engem. Azt gondolom, hogy a történelem a fontos személyiségek között fogja jegyezni. Úgy, mint aki színészként és zenészként egyaránt sikeres lett. ...
Ami igazán meglepő Ji-hoonban, az az, hogy egyfajta düh, bosszúvágy és szomorúság, az összes efféle sötét, komor negatív motiváció az ő esetében rendkívül optimista és derűs módon ölt testet.
(Park Chan-wook rendező)

RAIN KRÓNIKA: 200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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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CSINÁLT RAIN EZEN A NAPON?



A NAP HÍREI ÉS ESEMÉNYEI (áttekintés):






021218 MBC 섹션TV_골든드스크 시상식 현장(비&박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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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PARADISE




가수 "비" 아버지 인터뷰

2003.12.18. 09:35


*중1때는 6인조 그룹사운드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그룹에서 랩과 안무를 맡았지만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다. 솔직히 아버지 정기춘씨는 아들이 뭘 하고 다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학교 생활을 충실하게 해 별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했던 것.
“지훈이는 성실한 아이예요. 용돈을 주면 절대 헤프게 안 썼습니다. 그래서 늘 통장이 불어났죠. 유일하게 신발 사는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신발 모으는 취미가 있었거든요. 그때 모아둔 신발들을 이제껏 제가 다 신고 있죠”

중고교 시절까지 어렵지 않은 형편에서 아이들을 키웠다.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한 아내와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두 아이를 키우기는 힘들지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친건 99년 초부터. 일을 하던 아내가 손을 다쳤는데 피가 멈추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평소 건강하던 사람이었기에 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어도 솔직히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게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중병으로 여기질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너무 후회됩니다. “

더더욱 가슴 아픈 것은 쉽사리 피로를 느끼는 병을 앓았는데도 아내는 평소와 똑같이 일을 한 것이다. 자신이 조금만 깨우쳤어도 아내를 쉬게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렇게 쉽게 합병증까지 얻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뭐라 할말이 없을 정도다. 아내의 병이 악화되면서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게를 내놓아야 했다. 가게를 팔고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그는 친구에게서 브라질로 가서 2~3년 고생하면 1억원 정도는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브라질로 향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눈 딱 감고 고생하면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아픈 아내와 자식들을 남겨 두고 99년 7월 비행기에 올랐다. 출국 전 아픈 아내에게 타지로 떠난다는 말을 할 수 없어 당시 고등학교3학년이던 지훈이에게 편지를 쓰고 떠났다.

“얼마전 방송에서 지훈이가 그때 날 원망했고, 어느 정도 힘들었는지를 울면서 얘기하는 것을 봤어요. 아버지로서 너무 미안했지만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던 지훈이는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기에도 벅찬 시기였음에 분명하다. 그런 그에게 아픈 엄마와 어린 여동생을. 떡집을 처분한 얼마의 돈으로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것.

“지훈이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고 갔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원망도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고 얘기하더라구요”

브라질로 건너간 그는 친구말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경험해야 했다. 2~3년에 1억이란 목돈을 벌려면 하루24시간 이상 일에 매달려야 가능했던 것이다. 서울보다 인건비가 싼 그곳에서 생활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두달만에 한국으로 되돌아 왔다. 귀국하자마자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남의 집에 월급을 받으면 떡 만드는 기술자로 취직을 했다. 20년 이상 내 장사를 하다가 남의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악화되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뭐든지 해야했다.
지훈이는 학교와 연습실, 그리고 병원을 오가며 고생했다. 딸 하나 역시 일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가 있는 병원에서 생활했다. 그렇게 힘든 생활 속에 버틴 가족들이었지만, 아내는 2000년11월 심부전증에 의한 패혈증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지훈이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매진했다. 음악과 춤에 빠져 지내던 그는 박진영씨에게 직접 찾아가 오디션을 받고 발탁됐다. 고3때부터 안무 연습실에서 생활했다. 하루 8시간 춤을 췄고, 밤에는 노래 연습을 했다.

“지훈이가 그래요. 너무 힘든 시기였지만 춤과 노래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아예 없었다고요, 그래서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요, 사춘기를 그렇게 넘긴 거죠”

박진영은 “ 한 달에도 수백 명의 가수와 팀이 나오는데 성공한 팀은 거의 없다. 그 안에서 성공하려면 실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 연습을 같이 하고 있지만 내가 원하는 실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앨범을 내준다는 약속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열심히 해라” 며 지훈이를 자극했다.

한창 연습을 하던 시기에 어머니의 병이 악화되자 지훈이는 박진영에게 엄마 이야기를 했다. 병세는 악화되었지만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지훈이의 엄마를 본 박진영은 환자를 곧바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병원비를 걱정말라는 박진영의 말을 뒤로 한 채 엄마는 ‘아들에게 부담 줄 수 없다’며 퇴원을 강행하기도 했다. 엄마를 잃은 지훈이는 더 연습에 전념했다. 하루에 2~3시간 자고, 연습에 몰두해 코피 쏟기도 여러 차례였다.

혹독한 연습은 2년여 동안 이어졌다. 중간에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지훈이는 프로듀서 박진영을 믿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 번도 앨범 언제 나오냐? 고 묻지 않았고, 아들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을 인내한 지훈이는 작년 4월 드디어 첫 앨범을 녹음하고, “비”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정기춘씨(47세)를 만난 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아침부터 장에 내다 팔 떡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신세대 가수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스타 비의 아버지가 모자를 눌러쓰고 다양한 떡을 빠른 손놀림으로 만들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들이 유명해지면서 tv출연을 한 탓에 얼굴이 알려져 이미 동네에서는 그의존재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 사진 촬영을 할 때도 동네 분들이 포즈가 그게 뭐냐?며 한마디를 던지곤 했다. 생각보다 훨씬 젊고, 출중한 외모?였지만 아들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지훈이는 친할아버지를 많이 닮았어요, 저는 쌍꺼풀이 있고 키도 그리 크지 않은데 할아버지는 키도 크셨고, 쌍꺼풀 없이 큰 눈이셨어요”

충남 서산이 고향인 그는 결혼과 동시에 서울 용산구에 터를 잡았다. 떡집을 하던 이모댁에 놀러 갔다가 생각지도 않게 배워 떡을 만들게 됐고, 아내와 함께 시장에서 떡집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생활했다. 아들 지훈이와 3년 터울로 딸 하나를 낳았다.
추운 날 가게에 출퇴근을 할 때는 늘 정씨가 어린 아들 지훈이를 데리고 다녔다. 대부분은 유모차를 이용했는데 어린 아들은 엄마 아빠가 일할 때 울지도 않고 유모차에서 잠을 잤다. 주위 사람들이 아이가 순해 돈벌어준다고 했을 정도다.

“서너살 때 신촌에서 한 번 아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하루종일 찾고 돌아다녔는데 저녁때가 다 돼 동사무소에서 아들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어요. 지훈이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을 동사무소 직원이 데리고 와서는 아이가 너무 예쁘다고 퇴근 할 때까지 데리고 있었던 거죠”

지훈이는 누구보다 평범하게 자라주었다. 떡집을 하는 통에 설날이나 추석 등 바쁜 날에는 으레 가게에 나와 엄마 아빠를 도와 주었다. 설날 기계를 이용해 가래떡을 써는 일은 고등학교때까지 아들이 도맡아 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떡집을 한다는 것을 창피스러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전혀 내색 안 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신경을 안 쓴 부분도 있었겠지만요.”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는 줄 알았던 아들은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불쑥 “제가 안양예고 합격하면 허락하실 거에요?” 라고 물었다. 평소 아들에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말리지 않겠다. 라고 말해오던 그는 쉽게 허락했다. 당시 예고의 경쟁률은 대단했지만 지훈이는 합격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당시 지훈이의 담임 선생님이 지훈이가 합격하면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어려운 관문이었다.
지훈이가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선생님은 바로 그 중3때의 담임이다. 합격못한다는 선생님 말에 자극받아 더 열심히 이론과 실기 시험에 대비했던 것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지훈이는 자기 방 천장에 ‘안심하면 무너진다’라는 글을 써서 붙여 놓았다.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스스로의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것이다.

지훈이의 좌우명은 ‘끝까지 인내하자. 끝까지 겸손하자. 끝까지 노력하자’다. 아버지의 기억으로는 중고교 시절부터 지훈이 직접 만들어 새기던 말이다. 지금의 지훈이를 보면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요즘 애들은 연예인이 되겠다고 학원도 다니고 그런다는데 지훈이는 순전히 혼자서 모든 걸 알아서 했다. 부모가 걱정할 만한 행동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렸다.

“정말 제 아들이기 이전에 지훈이를 보면 많이 배웁니다. 내가 지훈이처럼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하고 묻기도 여러 번이었어요. 제나이 마흔이 넘었는데 해 놓은게 없습니다. 흐지부지 그렇게 인생을 살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훈이를 보세요. 자기 목표를 정하고 노력해서 되고 싶던 가수가 되었잖아요. 저는 지훈이는 걱정 안해요. 아들이기 이전에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아들을 보며 인생을 깨닫게 되었다는 그는 그래서 고향도 아닌 충청도 무극에 떡집을 차렸다. 제일 잘할 수 있는게 떡만드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용산 집고 1시간 반정도의 거리. 거의 출퇴근을 하고 있는 그의 떢집앞에는 아들인 지훈이의 큼지막한 브로마이드 사진이 걸려있다.

“떡을 만들다가도 지훈이를 보면 힘이 나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얼마 전 지훈이는 아빠! 한번 내려갈까? 친한 god형들하고 내려가면 좋을 것 아니야? 하고 물어오기도 했다. 그는 절대 내려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느 ㄴ이야기도 듣기 싫을 뿐더러 늘 미안한 아들에게 부탁할 일도 아니다 싶어서였다.

“남들이 쳐다보는 가수가 돼서 아빠가 떡집 한다는 걸 부끄러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본인이 먼저 그렇게 물어오니까 정말 자식 하나는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쁜 아들 신경 쓸까 문자메시지로 서로 안부를 묻는다는 그는 얼마 전 목돈이 생겼다며 아빠 통장에 입금시켜주겠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네가 어렵게 번 돈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말했어요. 음악 프로듀서나 패션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니까 나중에 필요한 자금으로 쓰라고 말이에요. 지훈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야 말 테니까요”

곧 지금의 떢집을 처분하고 고3이 될 막내딸과 함께 지내면서 멋진 퓨전 떡집을 낼 것이라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세상 모든 부모의 바람은 하나가 아닐까
나보다는 자식이 더 건강하고, 멋진 성품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 받는 이로 자라는 것, 마흔이 넘도록 하나도 해놓은게 없다는 그의 말은 어쩌면 큰 거짓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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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죠?
아무나 할 수 없었을 그 일이었을텐데,, 무슨 생각을 하며, 비는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을까요..
참 멋있는 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멋진 놈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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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DONG-A





슬픈 가족사 뒤늦게 털어놓은 인기가수 비  
“힘들 때마다 지병으로 세상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겨내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 비의 슬픈 가족사가 뒤늦게 밝혀져 화제다.

최근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가수 데뷔를 준비하던 고3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고백한 것.

트레이드 마크인 해맑은 미소 속에 감춰진 비의 슬픈 가족사를 들어본다. 



지 난 4월 ‘나쁜 남자’로 데뷔한 후 ‘안녕이란 말 대신’ ‘악수’ 등을 연속 히트시키며 올 가요계 최고의 루키로 부상한 인기가수 비(20·본명 정지훈). 해맑은 눈빛과 수줍은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그에게 남다른 가족사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화제를 모았다. 최근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가수 데뷔를 준비하던 중 어머니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실과 어려웠던 지난 시절에 대해 털어놓은 것. 특히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내려는 듯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 많은 여성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어머니는 90년대 후반 당뇨병 진단을 받은 후 합병증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2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어머니는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고, 당시 집을 나와 서울 합숙소에 머물며 가수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던 비는 스승인 박진영에게 ‘어머니를 살려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18세의 어린 비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사업 등의 이유로 집을 떠나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아 버지가 사업차 브라질로 떠나신 뒤 어머니의 병세가 너무 심해져 병원에 입원하셨어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아프신 걸 알면서도 가수가 되겠다는 욕심에 오랜 시간 함께 있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죄송스럽고 후회돼요. 그때는 집에 소홀했던 아버지가 참 많이 원망스러웠어요. 왜 제게만 이런 힘든 일이 생기는 걸까 분노도 느꼈고요. 하지만 제가 가수가 되길 바라셨던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결심했죠.”

이후 비는 노래와 춤 연습에만 전념했다. 한달에 코피를 3~4번씩 쏟아 박진영과 소속사 관계자들이 그의 건강을 걱정했을 정도. 그렇게 2년여 준비한 끝에 그는 ‘나쁜 남자’로 가요계에 발을 들였고 오늘날 최고의 인기 가수로 성장했다.

“힘들 때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겨냈어요. 그리고 이젠 아버지도 전혀 원망하지 않아요. 종종 아버지가 ‘너에게 짐이 된다’고 제게 말씀하실 때 죄송스러울 뿐이죠. 부족한 것은 많지만 이젠 제가 가족을 이끌어가고 싶어요. 아버지도 이제 힘들어 하지 마시고 인생을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영화 로 스크린에도 진출

비 의 손가락에는 항상 두개의 반지가 끼워져 있다. 하나는 어머니의 유품인 반지. “무대에서 긴장할 때마다 반지를 보고 마음을 진정시켰다”는 그는 최근 한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후 반지에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 하나는 가족 반지. 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그는 가족이 그리울 때마다 반지를 보며 허전함을 달랜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비가 외로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현재 충북 음성에 살고 있는 아버지, 서울에 있어도 따로 살고 있는 여동생과 조만간 함께 살 예정이기 때문이다.

슬픈 가족사를 딛고 가수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그는 이제 ‘영화출연’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극진 가라테로 전세계 무사들을 물리쳤다는 최배달의 삶을 다룬 영화 에서 주인공 최배달역을 맡은 것. 영화 의 양윤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내년 9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작성일 | 2002.12.18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드림써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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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조아 (neoib)






가수 비 아버지

요즘 인기최고! 가수 비 아버지
정기춘씨의 '가슴아픈 우리가족 이야기'

2년전 심부전증 아내 떠나보낸 귀 아들에게
의지하기 싫어 시골에서 떡방앗간 하며 산다"

정기춘씨(47)를 만난 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아침부터 장에 내다 팔 떡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신세대 가수로 인기를 오으고 있는
스타 비(본명 정지훈)의 아버지가 모자를 눌러쓰고 다양한 떡을 빠른
손놀림으로 만드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들이 유명해지면서 TV출연을 한 탓에 얼굴이 이미 동네에서는 그의 존재를
모르는 이가 없을정도. 사진 촬영을 할때도 동네 분들이 '포즈가 그가 뭐냐'며
한마디를 던지곤 했다. 생각보다 훨씬 젊고, 출중한 외모(?)였지만 아들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지훈이는 친할아버지를 많이 닮았어요. 저는 쌍꺼풀이 있고 키도 그리 크지 않은데
할아버지는 키도 크셨고 쌍꺼풀 없이 큰 눈이셨어요."

충남 서산이 고향인 그는 결혼과 동시에 서울 용상구에 터를 잡았다. 떡집을 하던
이모댁에 놀러 갔다가 생각지도 않게 배워 떡을 만들게 됐고. 아내와 함께 시장에서
떡집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생활했다. 아들 지훈이와 3년 터울로 딸 하나를 낳았다.
추운 날 가게에 출퇴근을 할때는 늘 정씨가 어리 아들 지훈이를 데리고 다녔다.
대부분은 유모차를 이용했는데 어린 아들은 엄마 아빠가 일할때 울지도 않고 유모차
에서 참을 잤다. 주위 사람들이 아이가 순해 돈벌어준다고 했을 정도다.

"서너살때 신촌에서 한번 아이를 잃어 버린적이 있습니다. 하루종일 찾고 돌아다녔는데
저녁때가 다 돼 동사무소에서 아들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어요. 지훈이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을 동사무소 직원이 데리고 와서는 아이가 너무 예쁘다고
퇴근할때까지 데리고 있었던 거죠."

지훈이는 누구보다 평범하게 자라 주었다. 떡집을 하는 통에설날이나 추석등
바쁜날에는 으레 가게에 나와 엄마아빠를 도와주었다. 설날 기계를 이용해
가래떡을 써는 일은 고등학교때까지 아들이 도맡아 했다.

"돌이켜본면 부모님이 떡집을 한다는 것을 창피스러워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전혀
내색 안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신경을 안쓴 부분도 이었겠지만지만요."

평밤한 학창시절을 보내는 줄 알았던 아들은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불쑥

"제가 안양예고 합격하면 허락하실 거예요?" 라고 물었다.

평소 아들에게 '네가 하고싶은 일은 말리지 않겠다'고 말해오던 그는 쉽게 허락했다.
당시 예고의 경쟁률은 대단했지만 지훈이는 합격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 지훈이의 담임 선생님이 지훈이가 합격하면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어려운 관문이었다.
지훈이가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선생님은 바로 중3때의 담임이다.
'합격 못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자극받아 더 열심히 이론과 실기 시험에
대비했던 것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한뒤 지훈이는 자기 방 천장에

'안심하면 무너진다' 라는 글을 써서 붙여놓았다.

무워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스스로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 떠나 보낸 뒤 더 열심히 연습에 몰두한 아들
고1때는 6인조 사운드 그룹의 멤버로 활동했다. 그룹에서 랩과 안무를 맡았지만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다. 솔직히 아버지 정기춘씨는 아들이 뭘하고 다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학교 생활을 충실하게 해 별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했던것.

"지훈이는 성실한 아이예요. 용돈을 주면 절대 헤프게 안썼습니다.
그래서 늘 통장이 불어났죠. 유일하게 신발사는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던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신발 모으는 취미가 이었거든요.그때 모아둔 신발들을
이제껏 제가 다 신고 있죠."

중고교시절까지 어렵지 않은 형편에서 아이들을 키웠다.
아름다운 외보를 보고 한눈에사랑에 빠져 결혼한 아내와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두 아이를 키우기는 힘들지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친 건 99년 초부터.
일하던 아내가 손을 다쳤는데 피가 멈추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평소 건강하던 사람이었기에 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어도 솔직히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게 생명에 지장을 줄수도 있는 중병으로 여기질
않았던것 같아요. 지금은 너무 후회됩니다...."

더더욱 가슴 아픈것은 쉽사리 피로를 느끼는 병을 앓았음에도 아내는 평소와
똑같이 일을 한 것이다. 자신이 조금나 깨우쳤어도 아내를 쉬게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렇게 쉽게 합병증까지 얻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뭐라
할말이 없을 정도다. 아내의 병이 악화되면서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게를
내놓아야했다. 가게를 팔고 마땅히 할일이 없었던 그는 친구에게서 '브라질로
가서 2~3년 고생하면 1억원정도는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브라질로
향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눈 딱감고 2~3년 고생하면 복돈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아픈아내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99년 7월, 비행기에 올랐다.
출국전 아픈아내에게 타지로 떠난다는 말을 할수없어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 지훈이에게 편지를 쓰고 떠닸다.

"얼마 전 방송에서 지훈이가 그때 나를 얼마나 원망했고, 어느정도 힘들었는지
울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봤어요. 아버지로서 너무 미안했지만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던 지훈이는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기에도
벅찬 시기였음이 분명하다. 그런 그에게 아픈 엄마와 어린여동생을. 떡집을
처분한 얼만의 돈으로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것.

"지훈이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고 갔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원망도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줬다고
얘기하더라구요."

브라질로 건너간 그는 친구 말과는 전혀다른 생활을 경험해야 했다.
2~3년에 1역이란 목돈을 벌려면 하루 24시간 이상 일에 매달려야 가능했던 것이다.
서울보다 인건비가 싼곳에서 생활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두달만에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귀국하자마자 그는 생활비를 벌기위해 남의 집에 월급을
받으며 떡만드는 기술자로 취직을 했다.20년이 넘게 내 장사를 하다가 남의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악화되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뭐든지 해야했다.




184cm의 키에 동화속 남자 주인공 같은 밝은 미소의
가수비에겐 또래에 비해 가슴아픈 가족사가 숨어 있었다.
엄마를 떠나보낸 뒤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지냈던 거.
방송에 나와 상처를 고백한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지훈이는 학교와 연습실, 그리고 병원을 오가며 고생했다. 딸하나 역시 일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가 있는 병원에서 생활했다. 그렇게 힘든 생활속에 버틴
가족들이었지만 아내는 2000년 11월 심부전증에 의한 패혈증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지훈이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매진했다. 음악과 춤에 빠져
지내던 그는 스타 제조기 박진영에게 직접찾아가 오디션을 받고 발탁 됐다.
고3때부터 안무연습실에서 생활했다.

"지훈이가 그래요. 너무 힘든 시기였지만 춤과 노래 외에 다른 생각할 겨를이
아예 없었다고요. 그래서 이겨낼 수 있었던거 같다고요. 사춘기를 그렇게 넘긴거죠."

박진영은 "한달에 수백명의 가수와 팀이 나오는게 성한 팀이 거의 없다. 그안에서
성공할려면 실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 연습은 같이 하고 있지만 내가 원하는 실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앨범을 내준다는 약속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열심히 해라!"라며
지훈이를 자극했다.

한창 연습을 하던 시기에 어머니의 병이 악화되자 지훈이는 박진영에게 엄마이야기를
했다. 병세는 악화되었지만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지훈이의 엄마를
본 박진여은 환자를 곧바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병원비를 걱정말라는
박진영의 말을 뒤로 한 채 엄마는 '아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며 되원을 강행하기도
했다. 엄마를 잃은 지훈이는 더 연습에 전념했다. 하루에 2~3시간만 자고 연습에 몰두해
코피를 쏟기도 여러 차례였다.
혹독한 연습은 2년여 동안 이어졌다. 중간에 힘든 시기도 이었지만 지훈이는 프로듀서
박진영을 믿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번도 '언제 앨범 나오냐?'고 묻지 않았고 아들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을 인내한 지훈이는 작년 4월 드디어
첫앨범을 녹음하고 박진영이 지어준 "비"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목표가 분명하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아들이기에 걱정안 한다.

지훈이의 좌우명은 '끝까지 인내하자. 끝까지 겸손하자. 끝까지 노력하자.'다
아버지의 기억으로는 중학교 시절부터 지훈이가 직접 만들어 새기던 말이다.
지금의 지훈이를 보면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요즘 애들은 연예인이 되겠다고
학원도 다니고 그런다는데 지훈이는 순전히 혼자서 모든걸 알아서 했다. 부모가 걱정할
만한 행동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렸다.

"정말 제 아들이기 이전에 지훈이를 보면 많이 배웁니다. 내가 지훈이처럼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 하고 묻기도 여러번이었어요. 제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 해놓은게 없습니다.
흐지부지 그렇게 인생을 살았던것 같아요. 그런데 지훈이를 보세요. 자신 목표를 정하고
노력해서 되고 싶던 가수가 되었잖아요. 저는 지훈이 걱정 안해요.
아들이기 이전에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아들을 보면서 인생을 깨닫게 되었다는 그는 그래서 고향도 아닌 충청도 무극에 떡집을 차렸다.
제일 잘할 수 있는게 떡만드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용산 집과는 1시간 30분
정도거리. 거의 출퇴근을 하고 있는 그의 떡집 앞에는 아들 지훈이의 큼지막한 브로마이드
사진이 걸려있다.

"떡을 만들다가도 지훈이를 보면 힘이 나요.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얼마전 지훈이는 '아빠!나려갈까? 진한 god형들하고 내려가면 좋을것 아니야?'리고 물어오기도 했다.
그는 절대 내려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이야기도 듣기 싫을뿐더러
늘 미안한 아들에게 부탁할 일도 아니다 싶어서였다.

"남들이 더 쳐다보는 가수가 돼서 아빠가 떡집을 한다는걸 부끄러워 할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본인이 먼저 그렇게 물어오니까 정말 자식하나는 잘키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쁜 아들이 신경쓸까 문자메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는 그는 얼마전 목돈이 생겼다며
아빠 통장에 입금시켜주겠다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네가 어렵게 번 돈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말했어요. 음악프로듀서나 패션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니까 나중에 필요한 자금으로 쓰라고 말이예요. 지훈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야
말테니까요."

곧 지금의 떡집을 처분하고 고3이 될 막내딸과 함께 지내면서 멋진 퓨전떡집을 낼 생각이라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세상 모든 부모의 바람은 하나가 아닐까. 나보다는
자식이 더 건강하고, 멋진 성품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람받고 인정받는 이로 자라는것.
마흔이 넘도록 하나도 해놓은게 없다는 그의 말은 어쪄면 큰 거짓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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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MY NEWS
오마이뉴스


 




장나라와 비 크레이지 아케이드에 등장
기사입력 2002-12-18 09:30 최종수정 2002-12-18 09:30


지난 16일 엠플레이는 인기 가수 장나라,비, 인기 캐릭터 뿌까/마시마로 등의 이미지 사용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고, 자사의 인기 온라인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테트리스’의 게임판 치장 아이템으로 도입했다고 밝혔다.

게임판 치장은 인터넷 공간에서 개성 표출도구로서 인기를 얻고 있는 아바타 시스템을 캐주얼 게임에 접목한 것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자신의 ‘게임판’을 다양한 아이템으로 치장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첫번째로 추가된 게임판 아이템으로는 장나라, 비, 뿌까, 마시마로, 배찌 등의 이미지로 꾸며진 총 12종을 선보였으며, ‘크레이지 아케이드-테트리스’ 게임 내 상점에서 1천원에서 4천원 선에 판매된다.

강신철 대표이사는 “실제 계정수가 3천만 개, 최고 동시접속자수가 33만 명에 달하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청소년들이 즐겨 찾는 하나의 미디어로서 정착하고 있다.”며 “이번 시도는 연예인/캐릭터 등의 홍보 매체 및 캐주얼 게임의 수익 모델로서 양 사 모두에게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12월 16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매일 ‘크레이지 아케이드-테트리스’에서 게임판 아이템을 구입한 유저들 중 추첨해 총 12명에게 캐릭터 상품을 증정하며, 12월 총 구매자 중 추첨을 통해 12명에게 플레이스테이션2 게임기를 증정하는 이벤트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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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콘서트가 6개월만에 부활한다<스포츠 서울>
via ㆀR.U.rainㆀ[알유레인]


▶게릴라콘서트’가 6개월 만에 부활한다.

‘가수생활 절체절명의 위기’
‘안대를 풀어주십시오’ 등과 같은 과장스럽고 극적인 말로 익숙한 MTV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인기코너 ‘게릴라콘서트’가 신년특집방송을 시작으로 다시 정규 편성된다.

특정 가수가 장소와 시간을 예고하지 않은 채 게릴라식으로 나타나 대규모 관객 동원에 도전하는 ‘게릴라콘서트’는 2000년 10월부터 1년9개월여 동안 방송되며 인기를 모아온 장수코너. 지난 7월 ‘김자옥-오승근 부부’편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박수홍의 꿈★은 이루어진다’를 폐지하는 등 코너를 물갈이하는 과정에서 ‘게릴라콘서트’를 한시적으로 부활하기로 결정한 ‘일밤’ 제작진은 화제의 가수를 게스트로 초대해 다시 한번 눈물 어린 도전기를 실을 예정이다.

첫 주자로는 가수 비(사진)가 나선다.
2002년 가요계가 건진 대어급 신인가수로 꼽히는 비는 곧 불시에 한 지역을 습격해 게릴라콘서트를 벌인다.

출처- 레인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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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 Rain In My Heart

716 [소식] (2002.12.11~2002.12.17) 가요 베스트셀러



(2002.12.11~2002.12.17) 가요 베스트셀러



1 -  브라운 아이즈 2집 - REASON 4 BREATHING ?
 - 가요 - (주)IKPOP 57,443 30,084 0 87,527

2 -  쿨(COOL) 7.5집 - SECOND WHISPER
 - 가요 - (주)웅진미디어 24,525 9,810 0 34,335

3 -  티(T) 2집 - TO MY LOVE
 - 가요 - (주)IKPOP 19,511 6,540 0 26,051

4 -  에스엠 타운 4집 - 2002 WINTER VACATION
 - 가요옴니버스(VA) - (주)IKPOP 16,677 5,886 0 22,563

5 -  THE WINTER(VA)
 - 가요옴니버스(VA) - T-EMTERTAINMENT 9,483 5,995 0 15,478

6 -  문희준 - LIVE REVOLUTION
 - 가요 - (주)IKPOP 13,843 0 0 13,843

7 ↑
+1  부활 - 새벽(부활 + 이승철)
 - 가요 - (주)IKPOP 7,739 4,469 0 12,208

8 ↓
-1  이기찬 6집 - NEWSTORY II
 - 가요 - (주)IKPOP 8,175 3,924 0 12,099

9 -  엠씨 더 맥스 1집 - 잠시만 안녕
 - 가요 - B.M.G 6,104 4,578 0 10,682

10 ↑
+2  싸이 3집 - 챔피언
 - 가요 - (주)IKPOP 5,123 4,033 0 9,156

11 -  이수영 4집 - MY STAY IN SENDAI
 - 가요 - (주)서울음반 5,123 3,706 0 8,829

12 ↓
-2  신승훈 - THE LEGEND: SPECIAL ALBUM
 - 가요 - (주)IKPOP 5,995 2,616 0 8,611

13 ↑
+4  장나라 2집 - SWEET DREAM
 - 가요 - (주)IKPOP 3,270 4,469 0 7,739

14 -  유엔(UN) 3집 - EXTREME HAPPINESS
 - 가요 - (주)도레미레코드 4,142 3,488 0 7,630

15 -  유리상자 6집 - FAVORITE
 - 가요 - (주)IKPOP 4,905 2,398 0 7,303

16 ↑
+3  박화요비 3집 - BECAUSE I LOVE YOU
 - 가요 - (주)IKPOP 3,706 3,052 0 6,758

17 ↓
-4  크라잉 넛(CRYING NUT) 4집 - 고물 라디오
 - 가요 - 케이엠컬쳐 4,796 1,744 0 6,540

18 -  소찬휘 6집 - THE BEGINNING
 - 가요 - WARNER 4,033 2,289 0 6,322

19 ↓
-3  에스이에스 - FRIEND: SPECIAL ALBUM
 - 가요 - (주)IKPOP 3,379 2,725 0 6,104

20 ↑
+1  이정현(2) 4집 - I LOVE NATURAL
 - 가요 - (주)예당엔터테인먼트 3,488 2,289 0 5,777

21 ↑
+1  왁스(WAX) 3집 - 부탁해요
 - 가요 - (주)웅진미디어 2,180 2,616 0 4,796

22 ↓
-2  보보(BOBO) 2집 - THE NATURAL
 - 가요 - (주)IKPOP 3,052 1,635 0 4,687

23 -  박효신 3집 - TIME HONORED VOICE
 - 가요 - (주)IKPOP 2,725 1,853 0 4,578

24 ↑
+1  이브(EVE) 5집 - EVER
 - 가요 - (주)IKPOP 2,398 1,199 0 3,597

25 ↑
+3  체리필터 2집 - MADE IN KOREA
 - 가요 - (주)IKPOP 1,744 1,526 0 3,270

26 -  이소라 5집 - SORA'S DIARY
 - 가요 - B.M.G 2,180 1,090 0 3,270

27 ↑
+6  지오디(GOD) - 영상 화보 2집
 - 가요 - 엔터원(ENTERONE) 3,161 0 0 3,161

28 ↓
-4  김광석 - COLLECTION: MY WAY(BEST ALBUM)
 - 가요 - 락레코드 2,398 763 0 3,161

29 -  보아 - MIRACLE
 - 가요 - (주)IKPOP 1,308 1,744 0 3,052

30 ↓
-3  윤도현 밴드 - 라이브 2집:LIVE IS LIFE
 - 가요 - (주)IKPOP 1,308 1,526 0 2,834

31 -  이문세 14집 - 빨간내복
 - 가요 - B.M.G 1,853 872 0 2,725

32 ↑
+2  트랜스픽션 1집 - TRANS FIXION 1ST
 - 가요 - 락레코드 1,526 1,090 0 2,616

33 ↓
-3  와이지패밀리(Y.G FAMILY) 2집 - 97-YG-02: WHY BE NORMAL?
 - 가요 - (주)IKPOP 1,853 545 0 2,398

34 ↑
+2  조규찬 - 무지개: BEST ALBUM
 - 가요 - (주)유니버샬레코드 2,180 218 0 2,398

35 -  이승환 - SERIOUS DAY: BEST ALBUM
 - 가요 - (주)서울음반 1,744 545 0 2,289

36 ↑
+2  비 1집 - 나쁜 남자
 - 가요 - (주)IKPOP 872 1,308 0 2,180

37 ↓
-5  별 1집 - 12월 32일
 - 가요 - (주)IKPOP 872 1,308 0 2,180

38 ↑
+2  진한커피(BLACK COFFEE) 3집 - 다음 사람에게는
 - 가요옴니버스(VA) - (주)신나라뮤직 1,090 872 0 1,962

39 -  자우림 4집 - 4: #1
 - 가요 - T-EMTERTAINMENT 1,090 872 0 1,962

40 ↑
+3  리쌍 1집 - LEESSANG OF HONEY FAMILY
 - 가요 - 소니뮤직(주) 1,199 654 0 1,853

41 ↑
+1  동감 2집(VA) - FOR MY FRIENDS...(표지모델:차승원,배용준...)
 - 가요옴니버스(VA) - (주)예전미디어 872 981 0 1,853

42 ↓
-5  박정현 - THE ROMANTIC STORY OF...: BEST ALBUM
 - 가요 - 케이엠컬쳐 1,199 654 0 1,853

43 ↑
+8  CLUB DANCE 가요 리믹스 2집 - 숙아
 - 가요옴니버스(VA) - 소니뮤직(주) 436 1,090 0 1,526

44 ↓
-3  유희열이 초대하는 새로운 음악세계: A WALK AROUND THE CORNER
 - 가요 - E.M.I 1,526 0 0 1,526

45 ↑
+2  언니네 이발관 3집 - 꿈의 발송
 - 가요 - (주)유니버샬레코드 981 436 0 1,417

46 ↓
-2  성시경 2집 - MELODIE D'AMOUR
 - 가요 - (주)도레미레코드 763 545 0 1,308

47 ↑
+1  브라운 아이즈 1집 - 벌써 1년
 - 가요 - (주)IKPOP 763 545 0 1,308

48 ↑
+4  더 네임 1집 - THE FIRST SCENE OF 名字
 - 가요 - (주)웅진미디어 654 654 0 1,308

49 ↑
+6  조성모 - DON'T FORGET TO REMEMBER(BEST ALBUM)
 - 가요 - (주)도레미레코드 436 763 0 1,199

50 ↑
+3  린(LYN) 1집 - HAVE YOU EVER HAD HEART BROKEN?
 - 가요 - 케이엠컬쳐 763 436 0 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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