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GLOBAL
Rain to participate in Community Chest of Korea
[2005-12-01]
Singer Rain, who last year was named spokesperson for the charity organization `Community Chest of Korea` (CCK), will participate in a donation ceremony slated for Dec. 1 at the presidential Blue House.
Rain and actress Chae Shi-ra, who was named CCK`s spokesperson in 1999, will deliver financial donations to the organization and present participants with souvenirs.
CCK expressed its gratitude to Rain for willingly accepting the offer to participate in the event. Rain, a pan-Asian hallyu star, was chosen for his diligent image and the important role that he plays in enhancing national prestige through various activities in public-interest events.
"If my participation in the event will help raise public interest in donating to charity, I will do my best to fulfill my duties as CCK`s spokesperson," said Rain.
Currently, Rain is filming the KBS TV2 series `A Love To Kill.` He will give concerts in Taiwan Dec. 29-30 as part of his Asian tour.
MONTHLY CHOSUN 2005/12
월간조선
[韓流의 뿌리를 찾아서] 비 아시안 투어 同行記
한국 드라마가 보여 준, 가족의 情
인간주의가 韓流의 도화선
황상민 교수
1962년 경남 진해 출생. 서울大 심리학과 졸업. 美 하버드大 심리학과 석·박사. 하버드大 과학센터 통계연구원, 캘리포니아大 정보·컴퓨터공업과 강사, 세종大 교육학과 교수, 한국심리학회 국제이사 역임. 저서 「아동의 기억발달」, 「유아의 심리」, 「대한민국 사이버 신인류」 등.
왜 韓流(한류)이지?
한국의 대중문화가 어떻게 동남아와 중국, 일본에서 인기를 끌 수 있지?
언제까지 이런 인기몰이를 할 수 있을까? 한때의 붐이나 유행이지 않을까?
한류에 대한 진단은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의 담론은 누가 일본과 동남아에서 인기가 있고, 아시아 각국의 팬들이 얼마나 많고, 드라마나 음반 수출이 얼마 되었다는 수준을 넘지 않는다.
한류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일본과 동남아 사람들이 한국의 대중 스타들에게 열광하는가? 열광하게 만드는 것은 한국적인 어떤 것인가, 아니면 그들과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그 무엇인가?
이런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류를 통해 큰 이익을 얻으려는 대중문화 관련 업계, 한류를 더욱 확대시키겠다는 정부 사람들의 이야기도 이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비」와의 인연
한류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한류 스타로 부상한 가수 「비」의 홍콩·중국 공연을 준비한 기획사에서 내게 「한류의 근원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이 한류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 분석해 달라」고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10월8일과 9일 홍콩에서 열리는 콘서트였다. 홍콩에서는 공연 티켓이 발매된 지 3시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700만 명이 살고 있는 홍콩에서 2만 명의 관객을 순식간에 모으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은 「수십 배의 웃돈을 주겠다」고 팬사이트에 메시지를 쏟아 부었다고 한다.
그런 한류의 「난장판」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됐다.
사실, 가수 비와 나는 인연이 깊다.
몇 년 전 연말에 망년회 초청을 받았다. 술자리는 아니고 문화·사회 현상을 두고 환담을 나누는 자리였다. 망년회를 주최하는 분이 내게 꼭 나오라며 이런 얘기를 했다.
『참, 그날 「비」가 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비가 오면 어때요. 실내에서 만나는데』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는 그분의 얼굴에서 나는 실수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아닌 가수 「비」였다. 대중문화의 심리를 연구한다는 심리학자가 얼마나 대중문화에 무지한지를 그는 확인시켜 주었다. 가수 비가,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대중문화의 현장으로 나를 다시 불러들였다.
홍콩으로 떠나기 전에 비의 노래를 몇 번 들었다.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음악이었다. 나에게 익숙한 리듬은 분명 아니었다. 제대로 콘서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지, 한류에 대한 체험이 될지 걱정이 되었다.
어떻게 비의 콘서트 현장에 앉아 있을까, 무거운 마음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JYP
콘서트를 몇 번 가보았는지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비의 콘서트 참가를 통해 한류의 심리를 파악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지 적잖이 염려되었다. 작년에 갔던 어느 콘서트에서는 졸았던 적이 있다. 그것도 1980년대 록음악이 연주되는 콘서트에서 말이다.
비행기는 3시간을 건너뛰어 홍콩 공항에 내려 앉았다.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중국어로 쓴 간판은 내가 중화권의 어느 도시에 왔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홍콩에 대한 나의 지식은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었다」는 사실 정도다. 그게 몇 년도였더라?
먼저 나를 홍콩으로 불러낸 「JYP 엔터테인먼트」의 정욱 팀장을 만났다. 「JYP」가 무슨 뜻이지? 전화로 몇 번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귀에는 『제이와이』라는 말만 맴돌았다. 명함을 받고 나서, 그냥 무식하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 JYP가 무슨 뜻인가요.
『박진영씨 아세요?』
―가수 박진영씨 말인가요.
『예, 우리 회사는 박진영씨가 만든 연예 기획사이지요. 이수만씨가 「SM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었듯이. JYP는 박진영씨의 영문 약자랍니다』
―아, 그렇군요. 가수 박진영씨가 음악활동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회사도 하는군요.
『그럼요. 춤이나 노래는 기본이고요. 안무가의 역할뿐 아니라, 가요 연예기획과 프로듀스의 역할도 하지요. 지금은 미국에서 가요 기획과 프로듀싱을 하고 있어요. 미국 팝뮤직 시장에서 직접 음악을 제작하고 프로듀싱까지 하겠다는 것이지요.
얼마 전, 빌보드 차트 10위 안에 들어간 곡을 프로듀싱했지요. 동양 사람이 서양 대중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 회사는 연예인 발굴, 공연기획 그리고 마케팅 등의 전체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해외에 수출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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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비(가운데)와 함께한 필자(왼쪽에서 네 번째). |
비를 발굴한 박진영
아, 그렇다. 「박진영씨가 빌보드 차트 10위 안에 든 곡을 만들었다」는 그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박진영이라는 가수는 춤을 잘 출 뿐 아니라, 생각이 있는 가수로 인정받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런데 「프로듀싱」이라는 것이 뭐지? 음악을 만든다는 뜻인가? 방송사처럼 음악을 만드나? 하지만, 너무나 초보적인 내용인 것 같아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수출까지 되는지 궁금했지만, 연예·음반 분야에 대한 나의 무식함이 탄로날 것 같아 조용히 설명만 들었다.
그래도 꼭 묻지 않을 수 없는 사안들이 있었다.
―그러면, 가수 비의 이번 홍콩 공연을 「JYP 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것인가요.
당황해하는 정팀장의 표정에서 나는 내가 또 얼마나 엉뚱한 질문을 했는지 직감했다.
『그럼요. 비가 저희 회사 소속입니다』
―아, 그래요.
『박진영씨가 처음에 지훈씨를 발굴 했지요』
가수 비의 본명은 정지훈이다. 내가 찾아보았던 자료에 그렇게 나왔었지. 1982년생. 내가 성인(20세)이 되었을 때, 가수 비가 태어났다. 처음에는 별로 어필하지 못했던 신인가수였다고 한다.
박진영씨가 그를 픽업하면서 완벽하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 재기했다는 것이다. 가수 비는 노래 실력뿐 아니라 최정상급인 춤 솜씨, 그리고 강인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풍기는 외모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가수 비에 대한 언급은 집사람도 했던 것 같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상품성이 있는 가수』라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런 정지훈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조련한 박진영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대중문화의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인지 잠깐 나도 궁금해졌다. 박진영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박진영에 대한 책이 나와 있질 않으니, 나의 지식 습득은 그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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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과 가수 별과 비(사진 왼쪽부터). |
공연장비·스태프 한국에서 空輸
정팀장이 설명하는 가수 비의 홍콩 콘서트는 마치 외국 대형 가수의 공연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이전에 「아바」나 「마이클 잭슨」이 한국에 왔을 때, 항상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스태프들과 수십 t의 공연 장비를 가져왔다」는 표현을 들을 수 있었다.
가수 비의 공연이 그랬다. 현지에서 장비를 임대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空輸(공수)한 장비라고 한다. 물론, 참가하는 全스태프들이 한국에서 왔다. 아시아권에서 이런 수준으로 공연을 하는 것은 가수 비가 유일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가수 비를 제외하더라도, 연주자·백댄서·공연진행자 등 최소 100명 정도는 될 대부대였다. 한국 가수의 공연이 「세계적인 가수」의 공연 준비와 같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10월8일 오후 8시,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가수 비의 「레인 레이니 데이(Rain Rainy Day)」 콘서트가 열렸다. 오프닝 게스트로 초대된 가수 「별」이 홍콩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비·송혜교 주연의 KBS 드라마 「풀하우스」의 주제곡 「I think I」를 불렀다. 관객들 대부분이 주제곡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공연 무대보다는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나에게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관객 대부분은 젊은 여성들이었다. 정팀장이 『홍콩에서 비의 팬들은 평균적으로 20代 중반의 여성들이 많다』고 한 말이 기억났다. 일본에서는 비가 10代와 20代에게서 인기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30代 미시 아줌마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받는다는데, 각기 다른 나라에서 각기 다른 연령층으로부터 다양하게 인기를 끄는 이유가 궁금했다.
또 다른 한류 스타인 배우 배용준의 한국內 팬 그룹은 일반적으로 젊은층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용준은 한국에서 인기 배우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열광적일 정도의 인기를 모으는 것은 아니다. 분명 수많은 별들 중에 조금 빛나는 스타일 뿐이다. 일본에서는 배용준이 열광적인 30~40代 아줌마 팬 그룹을 만들어 낸다. 다른 배우와 비교가 불가능하다.
아시아 스타가 되었다는 가수 「보아」의 경우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보아가 좀 잘 나가는 가수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보아는 일본에서 30~40代 아저씨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얻고 있다.
나라마다 다른 연령층의 팬들이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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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공연장에 가수 비의 본명인「정지훈」피켓을 들고 나와 환호하는 팬들. |
콘서트가 시작하기 전에 앞줄에 앉아 있는 2명의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지훈」이라는 이름을 쓴 피켓을 만들어 온 팬들이었다. 비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태국에서 왔다고 한다.
나에게 떠듬떠듬 한국말로 『비가 좋아요. 행복해요. 태국에서 왔어요』라고 했다. 비가 나온 드라마도 보았다는데, 『비가 너무 좋아요』라고 어설픈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그 아가씨의 얼굴에는 좋아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한글로 비의 본명을 쓴 피켓까지 만들어 왔으니, 더 무슨 표현이 필요할까.
다양한 한국 대중 스타들의 인기는 한류의 파도이다. 파도가 각기 다른 해양 생태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물고기의 서식처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아시아 각 지역마다 다르게 형성되는 한류 스타들의 팬 집단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국의 각기 다른 집단에 부각되는 한류 스타의 이미지는 어쩌면 우리 대중문화의 각기 다른 특성들을 이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징표일는지 모른다. 색동저고리의 색이 각기 다른 색으로 표현되듯이, 각기 다른 취향과 특성으로 나타나는 한류의 흐름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비의 공연은 즐거웠다. 노래는 음악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그냥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열정적으로 아니 현란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비의 춤 솜씨와 간간이 관객들에게 날리는 멘트는 관객들을 환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영어로 공연 중간중간에 관객들에게 열심히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비를 보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느껴졌다. 나중에 비가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밤이 새도록 영어문장을 외웠다는 사실을 알았다.
홍콩 사람들이 『비는 정말 노력하는 가수』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었다. 철저한 준비와 이미지 전략, 그리고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은 가수 비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이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처럼 느껴졌다.
가수 비의 공연은 노래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는 풍부한 얼굴 표정, 제스처와 춤동작으로 관객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선보였다. 관객들은 열광적으로 비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야광등·응원막대를 흔들어 댔다. 콘서트이기에 노래를 따라 부르고 야광등을 흔들면서 춤추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또는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나는 환호하는 관객들 사이에서 완전히 꾸어 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참, 민망스러웠다.
한국말로 노래하는 홍콩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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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하는 홍콩의 팬들. |
엘비스 프레슬리, 존 트라볼타, 마이클 잭슨 등 내가 알고 있는 춤 잘 추는 가수의 이름을 연상하면서 무대 위의 비가 보여 주는 현란한 춤 솜씨를 즐겼다. 노래를 부르면서 춤추고, 또 중간중간에 영어로 관객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비의 콘서트는 또 다른 형태의 뮤지컬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내가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2만여 관객들은 콘서트 내내 비의 노래에 환호하며 따라 불렀다.
홍콩 관객들은 모두 한국말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홍콩이 아니라, 서울의 잠실 체조경기장이라고 해도 별 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간중간에 비를 환호하는 소리도 한국말이었다. 계속되는 관중들의 환호는 결국 나를 의자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비가 백댄서와 만드는 환상적인 춤사위와 노랫가락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를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공연 중간에 박진영이 무대에 나와 노래와 춤을 보여 주는 순서가 있었다. 찬조출연인지 초대출연인지 알 수 없지만, 박진영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에게 박진영의 노래와 춤이 더욱 편안하고 익숙하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나의 시대와 느낌에 더 가까우면 좋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가수 비는 박진영을 『나의 스승이자 형님, 프로듀스』라고 했다. 아, 그때 프로듀스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었다. 가수를 발굴, 기획 그리고 공연을 하는 사람 이었다.
홍콩 대중의 연인
2시간의 공연은 마치 한순간처럼 끝났다. 2만 명이 넘는 관객의 마음을 2시간 동안 꽉 붙들어 놓을 수 있는 가수 비의 능력이 놀라웠다. 비의 노래는 귀를 즐겁게 했고, 춤은 눈을 놀라게 했다.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표정은 관객들에게 자신이 마치 애인처럼 또는 편안한 누이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좌우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간간이 비쳐지는 유혹하는 듯한 비의 표정과 미소는 관객들을 더욱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대중의 戀人(연인)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재능을 보여 주어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가수 비는 노래하는 가수라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엔터테이너였다.
비의 공연은 노래가 아니라 춤과 연기로 이루어진 한 편의 드라마였으며, 노래는 모두가 공유하는 콘텐츠였다. 춤·노래, 그리고 연기 모두에서 최고 수준에 이른 예술적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공연이 끝난 후, 홍콩에 불어닥친 한류에 대한 나의 탐색은 더욱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
『비의 노래와 춤이 왜 이곳에서 인기가 있나요?』
『홍콩에서 그보다 더 인기 있는 가수는 없나요?』
『비를 어떻게 처음 알게 되셨나요?』
『중국과 일본 가요도 있을 텐데, 그것에 비해 비의 인기는 어떠한가요?』
『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비교적 간단했다. 종합하자면, 이런 응답들이었다.
『비가 다른 가수와 차별되는 것은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모두 잘하잖아요. 노래 잘 부르는 가수, 춤 잘 추는 가수는 많이 있지만 이것을 모두 잘하는 가수는 그리 흔치 않거든요』
『전에는 홍콩에서 일본 팝가수들이 인기를 차지했지요. 하지만, 이제 그 자리를 비가 차지한 것 같아요. 비의 경우 홍콩 사람들이 처음 알게 된 것은 가수로서가 아니에요. 「상두야 학교 가자」나 「풀하우스」와 같은 드라마였죠. 그 드라마에서 비가 주연배우로 나왔잖아요』
『「풀하우스」는 홍콩에서 무려 80% 정도의 시청률을 올렸거든요. 홍콩 사람 치고 그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거예요. 정지훈은 친숙한 배우가 되었죠. 그런데, 그 정지훈이 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도 부르더라고요. 아시아 다른 가수들이 잘 하지 않는 춤이 끝내 주잖아요.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순수하고 천진한 「멀티플레이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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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도중 환하게 미소 짓는 비. |
홍콩에서는 연기자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하는 것이 그리 낯선 일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일반적 인식은 어떠한가? 다재다능한 것을 좋다고 보지만, 연기자가 가수로 진출하는 것이나 또는 가수가 연기를 하면 본업이 아닌 외도로 보려고 한다. 마치 본래의 자기 영역에서 이탈하는 것 정도로 생각해 불편하게 보기 쉽다.
홍콩은 그런 인식이 없다고 한다. 홍콩의 최고 스타인 유덕화 등은 연기와 노래를 함께 한다. 요즘 우리의 대중문화계에서도 가수가 연기자로, 코미디언이 MC로, 아나운서가 코미디 프로로, 연기자가 가수로 다양한 영역을 개척하는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드라마를 통해 처음에 친숙해진 배우가 가수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한류의 또 다른 성공 포인트처럼 느껴졌다. 가수 비의 경우에는 단순히 연기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와 춤 솜씨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 준다는 점이 또 다른 장점으로 작용한다.
홍콩의 여성들이 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순수하고 천진한」 이미지,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이번 콘서트를 취재하는 여러 매체들과의 인터뷰 현장에 동석하는 기회가 있었다. 비는 밤늦게 끝난 공연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말끔한 얼굴로 진지하게 여러 매체들과 인터뷰를 했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관심 없는 나로서는 이런 인터뷰가 생소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묻자 비는 『잘생기지 않은 얼굴』이라고 대답했다. 『쌍꺼풀이 없어서 오디션에서 무려 열다섯 번이나 떨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쌍꺼풀을 만들고 오면 한번 써주겠다』는 기획사의 요청을 과감히 거부했다고 한다. 연예활동을 포기하더라도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댈 수는 없다는 고집으로 버텼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쌍꺼풀이 없는 내 얼굴에서 아시아 팬들이 더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는 설명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이미지 전략으로 믿어야 할 지, 아니면 진지한 비의 원래 성격으로 파악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홍콩에서 25억원 광고 계약
가수 비가 홍콩에 처음 온 것은 지난 7월이었다. 처음 홍콩에 도착했을 때 비는, 『누가 저를 알아볼 수는 있을까요』라고 농담 반 염려 반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항에는 그를 기다리는 팬과 파파라치로 가득 차 있었다. 비는 이미 홍콩의 인기스타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 2개월 사이 비는 홍콩 현지에서 광고만 모두 25억원 이상을 계약할 정도가 되었다.
홍콩 팬들과 연예 관련 종사자들이 이야기하는 가수 비에 대한 이미지는 마치 한 편의 영웅담 같았다.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건방지고 방탕한 연예인이 아니었다. 홍콩인들이 중요시하는 사회적 가치는 스스로 열심히 일하고, 또 가족을 중시하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비의 모습은 바로 홍콩인들이 추구하는 생활 가치와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비는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배우이자 가수라는 것이다. 비가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기 전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홍콩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의 인기비결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한국 드라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가수 비에 대한 이야기와 유사했다. 「한국 드라마는 대부분이 가족 간의 情과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홍콩 사람들은 보고 있었다. 비록, 미움과 갈등의 순간들이 있지만, 한국 드라마를 통해 인간에 대한 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에는 노골적인 이윤추구나 자본주의의 비정함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한 홍콩 언론인의 평가를 들으며 갑자기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느낌이 들었다. 「돈에 살고, 돈에 미친」 것 같은 한국 사회에 대한 나의 인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대중문화로 드러나는 드라마와 영화는 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항상 현실의 삶의 모습을 다른 방식으로 묘사해 낸다. 아시아권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혹하는 것도 어쩌면 이들이 경험하는 현실의 삶을 유사하지만 다르게 묘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한국 드라마를 통해 이해한다. 마치,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로 미국을 그려 내고, 프랑스를 패션과 문화의 나라로 짐작하듯이 말이다. 어떤 외국의 대중문화가 특정 사회의 현실의 일부가 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환상이 현실로 전환되는 심리 현상이다.
한국 국가 이미지 업그레이드
가수 비의 콘서트에 온 홍콩인뿐 아니라 대만·태국·일본 팬들은 모두 열심히 『사랑해요』, 『행복해요』라는 말로 인사를 했다. 비의 노래를 열심히 한국말로 따라 부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알고 또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의 이름을 부르고 노래를 따라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한국인, 한국상품, 한국의 이미지 향상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대는 정작 우리가 가진 대중문화에 대한 이중적 시각에 의해 왜곡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한류의 정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自國(자국) 중심의 문화 우월적 사고로, 국수주의적 방식으로 한류를 이해하는 현상이 벌써부터 감지된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청소년기를 지냈던 우리 세대는 아바를 통해 스웨덴을, 비틀즈를 통해 영국을 알았다. 엘비스 프레슬리 또는 마이클 잭슨은 미국, 미국 문화의 대명사였다. 한류는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이 우리의 대중 연예인을 통해 떠올리는 한국의 모습이다. 이들이 등장하는 드라마, 공연은 바로 대한민국 홍보의 場(장)이자 대한민국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기회이다.
물론, 아시아인들이 쉽게 공감하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 한국의 현재 모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미국 사회를 알고 미국의 가치를 그대로 수용했듯이, 한국 드라마는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이 한국을 배우고 한국을 수용하는 교본이다.
우리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가치가 대중문화를 통해 아시아 전역에 진짜의 우리 모습처럼 전달되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아시아 각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을 경험한 부모 세대와 청소년 세대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제 한류라는 외부 문화를 통해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또 이것을 즐기면서 공통의 문화코드를 형성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아시아 각국의 세대차와 세대의 단절, 그리고 다양한 지역적 특성을 하나의 테마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시아를 결속하는 한류
아시아 각국이 한류를 통해 얻는 한국의 이미지가 이들이 추구하고 싶은 이상적 모습이라면, 이제 우리는 인간 공통의, 아니 아시아인들이 공유하는 대중문화의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가수 비는 10월22일 北京에서 3만5000명을 동원한 또 다른 콘서트를 가졌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아시안 투어 콘서트를 12월29일 대만에서 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아시아 6개국이 마치 올림픽 유치하듯 경쟁한 와중에 대만이 마지막 티켓을 가져갔다고 한다. 대만에서는 무려 3만 명의 팬들이 서명한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것이 최종 콘서트 장소를 대만으로 선정하게 된 결정적 이유라고 한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이 가진 대중문화의 힘을 제대로 파악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런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대중 연예인, 가수 비와 같은 인물을 국가는 어떻게 대우해야 할 것인가?
비의 아시안 투어가 축구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출전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을까? 이것을 국위선양이라고 할 수 있나? 그렇다면, 병역특례를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나의 머리를 스쳤다. 물론 나의 생뚱맞은 질문들은, 대중문화든 고급문화든 국위선양을 하는 특별한 행위는 국가에 의해 관리·통제, 그리고 육성되어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대중문화를 아시아인들이 공감하는, 문화전파 현상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중에도 나는 여전히 국가 자존심과 민족적 자부심을 반영하는 문화의 신화를 찾고 있었다. 세계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가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근대화 시대」의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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