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AIN KRÓNIKA: 2001.12.31.
A DEBÜTÁLÁS ELŐKÉSZÜLETEI
Megnyitották Rain első honlapját is, melyen olvasható volt a hivatalos profil [11]:
2002. április 4-én megjelent a honlapon Rain első üzenete [12]:
Közben leforgatták az első zenés videót, az élő előadásokhoz pedig az énekes-táncos gyakorlások "élesítése" folyt a próbatermekben.
Készült néhány felvétel, melyek segítségével beleláthatunk ezekbe a munkafolyamatokba. Az első videó befejező képsora a próbateremben táncoló Raint mutatja, akinek arca mindent elárul a pályakezdésével kapcsolatos bizakodásáról és a készülődés idejének extrém izgatottságáról.
Bejegyzéseinkben eddig tartott Ji-hoon felkészülésének útja, mely 2002. április 24-én elvezetett egy ragyogó színpadi jelenség, RAIN megszületéséig. A debütálás napjától kezdve igyekszünk a fellelhető számtalan média-anyagot és egyéb információt egy naptár napjaihoz rendelni, és időnként egy-egy összefoglaló áttekintést adni a történésekről.
Őszintén reméljük, hogy az eddig megjárt nehézségek és az időrendben még csak ezután következő próbatételek rögös útján elkísérhetjük a jelenleg is aktivitása teljében lévő, néha valóban mesebeli kis királyfira emlékeztető, de nagyon is valóságos hősünket a megérdemelt végső sikeréig és teljes boldogságának elnyeréséig.
Fighting, Ji-hoon / Rain! Még csak most jön a neheze...
[2002-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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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ain bemutatkozása az első honlapján, 2002
[9] 7 Rainmakers, documentary, KBS TV
[10, 11, 12] http://blog.naver.com/vj9881j0e1/80067440345
A DEBÜTÁLÁS ELŐKÉSZÜLETEI
Rain debütálásának első időpontját 2001. augusztusára tűzték ki. Valószínűleg az év első felében már majdnem teljesen összeállt az indulásához szükséges zenei és táncos anyag, ezért Ji-hoon
folyamatosan startra kész volt. A várakozás időszaka mégis extrém hosszúságúra nyúlt.
Ji-hoon beszámolójából úgy tűnhet, mintha JYP valami megmagyarázhatatlan oknál fogva rendre őt sorolta volna hátrébb mindenkivel szemben. De ennél valószínűbb, hogy JYP inkább védte őt, hiszen a debütálás stressze és komoly érzelmi-fizikai terhelése veszélyes is lehetett a nagyon törékeny lelkiállapotban lévő fiú számára, még ha ezt ő maga nem is ismerte fel.
Ji-hoon beszámolójából úgy tűnhet, mintha JYP valami megmagyarázhatatlan oknál fogva rendre őt sorolta volna hátrébb mindenkivel szemben. De ennél valószínűbb, hogy JYP inkább védte őt, hiszen a debütálás stressze és komoly érzelmi-fizikai terhelése veszélyes is lehetett a nagyon törékeny lelkiállapotban lévő fiú számára, még ha ezt ő maga nem is ismerte fel.
"Majd Jin-young visszajött az Államokból, miután befejezte a produceri munkáját. Ezért azt gondoltam, hogy azonnal nekiláthatok az albumomnak, de Jin-young azt mondta, hogy először az ő albuma fog megjelenni, mivel van egy jó dala." [4]"Egyfolytában így gyakoroltam és vártam az augusztust, amikor az albumom megjelenik. Aztán eljött az augusztus, és a helyzet ismét megváltozott. Ez (Park) Ji-yoon albuma kiadásának lett az ideje, aki ugyanannál az ügynökségnél volt. Az én albumomat megint elhalasztották, ezúttal novemberre. Az aggodalmam egyre nőtt a efféle sorozatos események miatt. Miután elkészült Ji-yoon albumával, Jin-young újra elutazott az USA-ba. Én nyugtalanul gyakoroltam tovább az éneklést, mivel nem volt semmi más, amibe kapaszkodhattam volna. Azon tűnődtem, hogy kiadja-e valaha is az albumomat ezután a két évnyi kemény munka után, valamint hogy kiöregszem abból, hogy táncos énekes lehessek. Amikor ez év februárjában visszatért Koreába, Jin-young azt mondta, 'most tényleg hagyom megjelenni az albumodat', és a felvétel egy hónap alatt kész is lett. Azért nem tartott sokáig a felvétel, mert az összes dal egyben volt már." [4]
Bár a halogatás ugyancsak idegőrlő lehetett, de az anyagok készre csiszoltsága miatt Ji-hoon mégis visszanyert egy csomó időt. Az események magas fordulatszámra kapcsoltak. Nemcsak az album felvételei folytak a stúdióban, hanem az előadói image véglegesítése is ekkor történhetett, melybe a színpadi megjelenéstől kezdve (jelmezek, frizura, make up stb.) a közönség számára hangsúlyozandó kép minden szegmense beletartozhat (viselkedés, stílus, nyilatkozatok, a "személyes mitológia" alapelemei stb). Mivel az új sztárjelöltekre hatalmas erővel zúdul a média és a közönség érdeklődése, ennek kezelésére is fel kell készíteni őket.
Az első fotókban gazdag bemutató 2002. márciusában jelent meg a debütálás előtt álló ifjú tehetségről az Ecole magazinban.
ECOLE Magazine [10]
Az első fotókban gazdag bemutató 2002. márciusában jelent meg a debütálás előtt álló ifjú tehetségről az Ecole magazinban.
ECOLE Magazine [10]
첫 공개! 박진영 사단의 신인가수 프로젝트.
4월 데뷔 예정!
예비가수 비의 우여곡절 데뷔 준비기
"세상에서 자기의 꿈을 이루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활이 없는 건 당연하구요. 대학 입학 후 그 흔한 미팅 한 번 못해본 건 기본, 물론 여자 친구는 꿈도 못 꿉니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해보는 일, 저는 해 본 적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느껴보지 못할 감동과 보람, 때론 좌절을 느낄거니까요! 가수에 대한 화려한 생각도 버리세요! 그 사람이 그렇게 화려하게 되기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고통과 좌절, 피 땀 어린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저도 화려해지는 그날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신인가수 비의 편지 中-
박진영이 이끌고 있는 JYP 사단, 그 안에는 현재 가수 데뷔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스물 여섯명의 예비 가수들이 있다. 오는 4월, 첫무대에 오를 예정인 가수 "비" 역시 그중 한 명. 비는 모든 스태프가 인정한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 가수를 꿈꾼 지 10년, 피나는 노력으로 그 꿈을 이룬 신인가수 비. 그리고 그를 만들어낸 박진영 사단, 그들이 들려주는 예비 가수들을 향한 조언들.
첫번째 조언: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인생 대역전! 스물두 살 비의 터닝 포인트 체크
초등학교 6학년의 정지훈, 가수를 꿈꾸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 가져본 꿈은 대통령, 그 다음은 과학자와 경찰. 가수라는 항목은 유년기의 지훈에게는 찾아보기 힘들다. 적어도 초등학교 졸업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한창 반 대항 장기자랑이 열리던 시간, 아무도 나서지 않자 보다 지친 지훈은 손을 번쩍 들고야 만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척 내성적인 아이였다는 지훈, 느닷없이 당시 유행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을 떠울리며 바닥을 다 쓸면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곧이어 쏟아지는 친구들의 박수갈채. 비록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그가 느낀 첫번째 희열이었다.
32등의 지훈, 담임선생님을 놀래키며 예고에 입학하다
중학교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춤을 추러 다니기 시작했다. 힙합, 웨이브... 닥치는 대로 테크닉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TV 속 가수들을 보며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성적은 당연히 하위권. 주변에서는 고등학교엔 갈 수 있을지를 놓고 진심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예고 진학을 꿈꾸던 지훈에게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니가 예고에 합격하면, 내가 대학교수를 하겠다." 사실 본인 역시 정말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을 정도. 결론은? 지훈은 예고에 진학했고, 선생님은 여전히 중학교 선생님으로 남았다.
고등학교 3학년의 지훈, 박진영과 춤을 추다
예고에 입학한 후부터는 혼자 가수의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열 번 정도 오디션을 보았을 무렵의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 좋은 데서 점심이나 먹자는 아는 형의 전화를 받고, 갖고 있는 옷 중 제일 멋진 옷을 입고 가장 아끼는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형이 안내한 곳은 레스토랑이 아닌 오디션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컴컴한 곳에 그 유명한 박진영이 있었다. 춤을 춰보라는 말에 무작정 힙합 음악을 틀어달라고 했다. 30분 동안 혼자 춤을 추고 나니, 이번엔 마이클 잭슨 음악을 틀며 진짜 춤을 춰보잔다. 제일 아끼는 옷과 신발이 땀에 젖어 마음이 아팠지만, 다시는 못 올 기회라는 생각에 열심히 또 췄다. 이젠 끝났겠지라고 생각할 무렵, 이번엔 따라 해보라며 그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서 태어나서 한번도 춰본 적 없는 춤을 무작정 춘 지 2시간 후, 조만간 연락을 주겠다는 얘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두 달 후 연락이 왔다. 박진영, Call To Me!
길고 지루한, 지독히도 외로운 시간이 시작되다 "아무도 널 도와주진 않아. 네가 나를 괴롭혀야 해." 다시 만난 박진영이 내뱉은 첫마디. 그리고 노래를 못하면 가수를 절대 못한다고, 절대 안 시켜주겠다고, 어느 단계까지 왔다고 느껴질 때 음반을 내주겠다고.... 연습을 시작한 첫날, 방 안에 커다란 글씨를 새겨두었다. '끝없이 노력하고, 끝없이 노력하면 나 자신을 이길 거고, 그것이 성공하는 길이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은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세상엔 아무도 없고, 나밖에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연습을 끝내고 어둠을 뒤로하고 혼자 앉아 있으면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왔고, 그러면 다시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돌이겨 보면 늘 똑같은 하루였지만 참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와 춤, 그리고 인생.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돌아온 진영 형이 말했다. 이젠 앨범 준비를 하자고....
어머님의 별세, 혼자만의 약속을 하다
2년의 시간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2000년 겨울 무렵.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지병으로 많이 아프셨는데, 가수를 하겠다며 많이 곁에 있어드리지 못한 게 못내 후회스러웠다. 중학생 시절 밤늦도록 춤추는 아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셨던 어머니, 하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어깨를 토닥거려주시던 어머니.... 눈물을 흘리며 결심했다. 더 나아가서, 더 크게 성공을 해야겠다고. 꼭 대상을 받아 어머님 제사 때 선물해드리겠다고. 큰절 한번 하겠다고. 그 뒤 지훈은 '비'로 다시 태어났다. 박진영이 지어준 이 예명은 그의 슬픈 느낌을 표현하는 이름. 내리는 비처럼 지훈에게는 강하면서도 슬픈,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His profile
1981년 6월 25일생.(공식홈 프로필은 82년) 본명 정지훈. 안양예고 연기연극과를 거쳐 현재 경희대 음악과 휴학 중. 2년 전 박진영 사단에 합류, 탁월한 춤솜씨로 박지윤 4집 '달빛의 노래'의 안무를 맡은 바 있다. 박진영과 함께 '영재 프로젝트'에 참가, 안무 선생님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오는 4월 데뷔앨범 발표 예정.
두번째 조언 50%의 능력과 50%의 노력을 믿어라!
안되면 될 때까지... 700일간의 변치 않은 하루 일과
"언제나 늘 저는 2년 동안 똑같습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미국 뮤지션들의 자료를 보면서 아침밥을 먹구 노래를 듣습니다. 그리고 점심때는 책을 보던가 신문을 읽고 노래 레슨을 받습니다. 저녁 때면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춤연습을 하죠. 그리고 새벽 2시쯤에 잠들죠!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똑같아요. 사실 하루하루가 힘이 들기도 하지만, 그대로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요! 남들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데.... 요즘은 정신 없이 바빠져서 좋아요."
-신인가수 비의 편지 中-
AM 08:00
이곳은 JYP의 합숙소. 6개월 전 앨범을 준비하면서 옮긴 숙소다. 함께 살고 있는 식구는 앨범 준비 중인 네 명의 남자들. 요리부터 청소까지 다섯 남자가 해결하고 있다.
AM 09:00
즐겨 먹는 아침 메뉴는 콘플레이크. 대신 저녁때는 꼭 찌개와 밥을 해먹는다. 김치찌개는 비의 자신 있는 메뉴. 아침식사 후에는 기관지를 보호해주는 한약을 먹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약간의 운동도 이 시간에 하는 일.
AM 10:00 이때부터는 미국 뮤지션들의 자료를 보면서 노래를 듣는다. 책상 가장 안쪽에 잘 보관해둔 뮤직비디오만 해도 약 20여 개. 개인적으로 춤출 때 가장 즐겨 듣는 음악은 재닛 잭슨.
AM 11:00
점심 무렵에는 꼭 책이나 신문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한동안 책을 너무 멀리한 것 같아 특별히 짠 스케줄이다. 요즘 읽는 책은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일 50가지'.
PM 01:00
이곳은 JYP 스튜디오. 일주일에 두 번, 보이스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노래 레슨을 받는다. 요즘은 녹음을 앞두고 있어 하루 한 시간씩 매일 받고 있다.
PM 07:00
JYP 건물 지하에 위치한 안무실. 거의 매일 밤 이곳에서 춤 연습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시간.
AM 02:00 취침 시간. 여섯 시간 후면 다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될 거다. 아니, 어쩌면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바빠질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음 좋겠다.
예비가수 비의 가방 속 필수품 리서치
1. 비의 보물 1호 MP3. 듣고 싶은 CD를 산 후 좋은 곡들만 따로 믹스해 들을 수 있어 CDP보다 편리하고 음감도 좋다고.
2. 2년 전에 어렵게 구한 뮤지션들의 자료. 이런 자료들은 정품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보면서, 들으면서 노래 부를 때의 창법이나 춤 스타일 등을 항상 연구하는 비의 학습지.
3.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마련한 피아노 반주책. 요즘 이 책을 보며 맹연습 중이다.
4. 노래 레슨을 할 때 꼭 필요한 책. 주로 팝송으로 노래 연습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5. 진짜 중요한 발 마시지 기구! 춤추는 사람들에게 발은 생명, 그날 그날 발의 피로를 풀어줘야 다음날 춤을 출 때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직접 구입했다. 춤추는 사람들에게 적극 권장!
6. 이제는 걸려오는 전화도 별로 없는 휴대폰. 매니저 형, 진영 형, 안무가 형, 코디 누나... 최근의 수신번호 리스트들이다.
세번째 조언 객관적인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보아라!
박진영 사단의 비 프로젝트 & 예비가수를 위한 조언
Special Thanks To...
진영 형! 항상 형에게는 부족한 저지만, 언젠가는 형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현종 형, 저를 위해서 항상 많은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고의 안무가이신 해성 형. 어쩔 땐 카운슬러로 고민상담까지... 감사합니다. 좋은 곡을 주시려고 매일매일 고생하시는 시혁형. 항상 무표정하시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저희를 생각해주시는 거 다 알아요. 명주누나, 우현누나! 항상 객관적인 입장에서 제가 잘못했을 때 따끔하게 혼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혹시나 잘못하면 많이 혼내주세요! 그리고 열심히 할게요. 형심 누나, 제가 활동하기 전부터 많이 신경 써주시고 넘 넘 감사해요. 앞으로 예쁜 얼굴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끝으로 god 태우형! 옆집 형처럼 다가와 배고플 때는 밥 사주고, 힘들어 할 때는 아무일 아니라며 어깨를 쳐주던 형의 손길. 절대 잊지 않을게.
-신인가수 비의 편지 中-
박진영 32세. JYP 프로듀서
신인가수 비를 발굴해 지금까지 이끌어온 주인공. 비는 그가 키우는 26명의 예비가수들 중 가장 많이 노력한 주인공이라고. 목소리도 슬프고, 춤도 슬프게 느껴져서 첫 앨범에도 그런 느낌을 살릴 생각
예비가수를 위한 조언
가수에게는 50%의 능력과 50%의 노력이 필요하다. 스스로 50%의 능력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빨리 포기했음 좋겠다. 50%의 능력을 가진 1천명 중 단 한 명만이 스타가 되기 때문이다.
방시혁 31세. JYP 프로듀서
5년 동안 박진영과 함께 음악작업을 해온 프로듀서.
god, 박지윤, 김건모, 임창정 등의 앨범작업에 참여했다. 이번 비의 앨범에서는 개성 강한 비의 카리스마를 표현할 생각. 비는 작곡가의 표현욕구를 만조시켜주는 한국에서 몇 안되는 가수라고.
예비가수를 위한 조언
계산하지 말고 열심히 하도록! 가수를 꿈꾼다면,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노래를 불러야 한다. 간혹 오디션을 보러오는 친구들 중,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건 거꾸로 된 얘기다.
조해성 32세. JYP 안무가 팀 마니아 단장으로 박지윤, god, 싸이, 박진영 등의 안무를 책임지기도 했다. 비는 신체조건의 좋고, 춤을 너무 잘 춰서 오히려 가르치면서 배우는 입장이라고.
예비가수를 위한 조언
춤만 잘 춰서는 안 된다. 모든 면에서 기초를 다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초를 가르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양형심 30세. 메이크업 아티스트
양미라, 이선진, 장동건, 박진영, 파파야, 오승은에 이어 비의 메이크업을 맡고 있다. 비는 메이크업보다는 오히려 헤어 쪽에 신경을 쓰는 편. 춤을 출 때 머릿결이 살아날 수 있도록, 조성아 뷰티폼에서 트리트먼트를 해주고 있다.
예비가수를 위한 조언
지구력은 필수. 오디션에 함격했다고 해서 바로 TV에 나오는 게 아니니까 1~2년, 길게는 3~4년 인내와 끈기를 갖고 노력해야만 한다.
홍현종 34세. JYP 매니지먼트 팀장
박진영, 김사랑, HOT, SES, 신화, 플라이 투더스카이, 보아, 박지윤까지 수많은 스타들을 만든 주인공. 비는 기존의 가수들과는 다른 새로운 세대의 가수 1호로 만들 생각. 매니저로서 보는 비의 장점은 성실하고 착한 심성, 그리고 남다른 감성.
예비가수를 위한 조언
사소한 것부터 스스로 찾아서 최선을 다해라. 시켜만 주시면 뭐든지 열심히 잘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데, 스스로 뭘 노력해야되는지 찾아야한다.
김명주,박우현. 32세,33세. 스타일리스트 김혜수, 엄정화를 비롯해 박지윤, 박진영까지 수많은 스타들의 스타일을 잡아준 주인공들. 비는 댄스가수지만, 슬픈 보이스 컬러를 가지고 있다. 이런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하늘하늘한 상의에 가죽 바지처럼, 언밸런스 코디를 할 생각. 몸이 예뻐 몸선을 잘 살릴 수 있게 디자인할 계획.
예비가수들을 위한 조언
수많은 신인가수와 인기있는 가수들을 만났지만, 성공하기 위해서는 딱 한 가지 길밖에 없는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열심히 하는 것. 피땀 흘리는 사람은 성공하기 마련.
고윤희 27세. 보이스 트레이너
전문적인 보이스 트레이닝을 위해 박진영이 직접 스카우트한 주인공. 비의 경우 풍성한 소리와 표현력이 무척 좋다고. 또 레슨 때 흘려서 얘기하는 것조차 안 잊어버리리 정도로 적극적이다. 개인적으로 R&B와 리드미컬한 댄스곡을 잘 소화한다고 생각.
예비가수를 위한 조언
노래는 마음으로 부르는 것. 테크닉이나 음성, 박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가사에 걸맞는 작곡가가 원하는 느낌을 표현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Megnyitották Rain első honlapját is, melyen olvasható volt a hivatalos profil [11]:
[공식홈 프로필] - 2002.04.03일 공식홈을 오픈하다...
생년월일 1982 6 25
신체조건 184 O형
학교 현재 경희대 포스트 모던 음악과 재학중
별명 우디
취미 영화감상/ 음악감상/ 신발&의류 모으기
특기 연기&춤에 관련된 모든것
좋아하는 색깔 레드&블랙
좋아하는 배우 찰리채플린&한석규
좋아하는 뮤지션 박진영/마이클잭슨/자넷잭슨/어셔
자신있는 스포츠 농구&스노우보드
하고싶은음악장르 R&B 힙합 펑키
첫사랑 아직은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랑을 꼭해보고 싶다
이상형 긴머리에 여자답고 마음이 착한 여자
좌우명 끝없이 노력하고 끝없이 인내하고 끝없이 겸손하자
음악관 음악과 안무는 내 삶의 전부이다
10년 후의 모습 의상 디자이너& 음악 프로듀서
2002. április 4-én megjelent a honlapon Rain első üzenete [12]:
안녕하세요, 신인가수 비 입니다.
2년이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2년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었고, 배우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라 생각하고 많이 부족하지만 제가 준비했던 모든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 심정은 기분이 좋고, 첫방송하는 날만을 손 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많이 떨리고 긴장되기도 하구요.
정말 여러분들이 기대하고 있는 만큼 많이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는 “비”가 되도록 노력할께요.
많이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Közben leforgatták az első zenés videót, az élő előadásokhoz pedig az énekes-táncos gyakorlások "élesítése" folyt a próbatermekben.
Készült néhány felvétel, melyek segítségével beleláthatunk ezekbe a munkafolyamatokba. Az első videó befejező képsora a próbateremben táncoló Raint mutatja, akinek arca mindent elárul a pályakezdésével kapcsolatos bizakodásáról és a készülődés idejének extrém izgatottságáról.
[2002-0056]
Az első zenés videót a felirat szerint Ausztráliában forgatták, és mint majd a bemutatás napjánál meglátjuk, jóval többet vállaltak benne, mint egy táncos zeneszám hatásos vágásokkal és effektekkel való "felturbózását".
[2002-0057]
JYP producerként sem tett engedményeket, amit Rain a mester perfekcionizmusaként emlegetett. Az igazság azonban az, hogy egyszerűen összetalálkozott mindkettőjük kényszeres maximalizmusra törekvése. Az előkészületekbe befektetett munka eredményét ezért összegezhette így JYP a 7 Rainmaker című dokumentumfilmben:
"Az első albumához a dalok, a táncok, az egész megjelenése várakozáson felüli lett. Minden a sztenderdek fölötti volt: jó énekes, jó táncos és nagyon jóképű." [9]
A debütálást követően természetesen a nagyközönség egyre kíváncsibb lett mindenre, ami Rainnel kapcsolatos, így augusztusban készült két olyan műsor is, melynek részletei rendkívül érdekesen kiegészítik és ellenpontozzák azt az időszakot, melynek fő problematikája a reflektorfények helyes irányba állítása volt.
Azonban Rain még távolról sem élte a sztárok életét, ezért azok a filmrészletek, amelyekben személyes kalauzolásával mutatja meg a debütálása környékén élt privát életének kulisszáit, nagyon megindító kontrasztot alkotnak a vágyak és törekvések világával. Olyan, mintha a népmesék legkisebb királyfija az út kezdetén kapna maga mellé egy forgatócsoportot. És mint a dokumentumfilmek általában, ezernyi más dologról árulkodnak, mint ami konkrétan a képeken látható-hallható.
Egy tipikus diáklakásban járunk, és Rain azt mondja, hogy az ügynökséghez tartozó, négy fiúból álló énekegyüttessel, a Noellel lakik együtt. Az emeletes ágy, a "fiús rend" is diákszálló érzetet kölcsönöz a látottaknak, és Rain lefegyverző őszinteségének köszönhetően konkrét képeket kapunk még a testhelyzetekről is, melyek az álmok szövögetését kísérték (és egyúttal árulkodnak az ölelés hiányáról is).
Egyébként rendes fiúk lakják a lakást, mert elmosogattak, és Rain a harcedzett serpenyőt is rutinosan használja, látszik, hogy nem először készíti benne a reggelijét. (Hogy vajon ez az ügynökség által a gyakornokok számára fenntartott szállás-e vagy már Rain saját bérleménye, az nem derül ki. Az elsőre szavaznánk, de lesz majd egy októberi felvétel, amelyen váratlanul Rain édesapja nyit ajtót ugyanebben a lakásban. Lehet, hogy ott csak arról van szó, hogy a vele készített interjúhoz ez volt a legkézenfekvőbb kulissza, mert máshol ő maga mondja, hogy a fia az ügynökség gyakornokainak szállásán lakott.)
Tényszerűen például azt tudjuk meg: Rain keményen edzett már ekkor is, hogy a fizikuma jól bírja a terheléseket - de az arcán ott a büszkeség, amelyet az erőnléte és testi adottságai miatt érez, és amellyel a tudnivalókat továbbadja. Ugyancsak kiderül, hogy JYP-val már járt Rain Amerikában, ahol a divat és a dizájn iránt érdeklődő fiú először vásárolt magának igazán menő darabokat - ezek ugyan még csak bőrövek, de mekkora, még a félszegségén is átsütő örömmel mutatja meg azokat! És nem lenne Rain, ha minderről a figyelmét egy pillanat alatt el nem terelné a felragyogó napfény, melyről rögtön megjegyzi, hogy "Amikor úgy éreztem, hogy megfulladok, a napot nézve tényleg jobban éreztem magam."
Egyébként rendes fiúk lakják a lakást, mert elmosogattak, és Rain a harcedzett serpenyőt is rutinosan használja, látszik, hogy nem először készíti benne a reggelijét. (Hogy vajon ez az ügynökség által a gyakornokok számára fenntartott szállás-e vagy már Rain saját bérleménye, az nem derül ki. Az elsőre szavaznánk, de lesz majd egy októberi felvétel, amelyen váratlanul Rain édesapja nyit ajtót ugyanebben a lakásban. Lehet, hogy ott csak arról van szó, hogy a vele készített interjúhoz ez volt a legkézenfekvőbb kulissza, mert máshol ő maga mondja, hogy a fia az ügynökség gyakornokainak szállásán lakott.)
Tényszerűen például azt tudjuk meg: Rain keményen edzett már ekkor is, hogy a fizikuma jól bírja a terheléseket - de az arcán ott a büszkeség, amelyet az erőnléte és testi adottságai miatt érez, és amellyel a tudnivalókat továbbadja. Ugyancsak kiderül, hogy JYP-val már járt Rain Amerikában, ahol a divat és a dizájn iránt érdeklődő fiú először vásárolt magának igazán menő darabokat - ezek ugyan még csak bőrövek, de mekkora, még a félszegségén is átsütő örömmel mutatja meg azokat! És nem lenne Rain, ha minderről a figyelmét egy pillanat alatt el nem terelné a felragyogó napfény, melyről rögtön megjegyzi, hogy "Amikor úgy éreztem, hogy megfulladok, a napot nézve tényleg jobban éreztem magam."
Bejegyzéseinkben eddig tartott Ji-hoon felkészülésének útja, mely 2002. április 24-én elvezetett egy ragyogó színpadi jelenség, RAIN megszületéséig. A debütálás napjától kezdve igyekszünk a fellelhető számtalan média-anyagot és egyéb információt egy naptár napjaihoz rendelni, és időnként egy-egy összefoglaló áttekintést adni a történésekről.
Őszintén reméljük, hogy az eddig megjárt nehézségek és az időrendben még csak ezután következő próbatételek rögös útján elkísérhetjük a jelenleg is aktivitása teljében lévő, néha valóban mesebeli kis királyfira emlékeztető, de nagyon is valóságos hősünket a megérdemelt végső sikeréig és teljes boldogságának elnyeréséig.
Fighting, Ji-hoon / Rain! Még csak most jön a neheze...
[2002-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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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7 Rainmakers, documentary, KBS TV
[10, 11, 12] http://blog.naver.com/vj9881j0e1/8006744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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